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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좌충우돌 첫 주 PDF Print E-mail
Written by Michael Kim   
Sunday, 13 September 2009 11:16

 

이곳 키르키즈스탄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많은 염려를 하였는데 잘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한국에서 보냈던 일년 동안의 학교 생활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개학일이 항상 9월 1일 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모든 학교들이 같은 날 개학을 하고, 또 개학일은 요일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에도 개학을 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학생들이 모두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정장을 한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아이들이 검은 정장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어색하게 보였었는데, 막상 우리 아이들이 모두 그러한 모습을 하고 나니, 참 괜찮게 보였다. 그래서 처음 등교하는 날 부리나케 카메라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옆집아이 아르겐도 함께 태우고 아침 8시쯤 학교로 향했다.

여름 동안에는 참으로 한산했던 학교였는데, 막상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많은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아이들의 이름이 각 반 학생들의 리스트에 올라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입학허가를 받기 위해 교장 선생님을 만났을 때, 반응이 시큰둥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전화로 허락을 받기는 하였지만 막상 아이들의 이름이 있을지 조금 마음이 조렸다. 필기체로 쓰여진 이름들을 하나 하나 읽다 보니 아이들의 이름들을 다 찾을 수가 있었다. “아휴, 다행이네.” 가슴을 쓰러 내렸다. 정연이는 7학년 b반 (a/b/B), 요한이는 5학년 a반, 고은이는 4학년 b반, 민우는 2학년 a반이다. 이때 선생님 한 분이 오셔서 러시아말로 인사를 하시면 말씀을 하시는데 , 당연히 알아듣는 것은 제로.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정연이의 홈룸 선생님 (담임선생님) 이셨다. 요한이는 아르겐과 같은 반으로 배정 받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한국에서 학교생활에도 적응기간이 좀 길었던 요한이었기 때문에 Somer는 아르겐과 같은 반으로 배정 받기를 기도했었는데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 같았다. 이미 요한이 주변에는 아르겐의 소개로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몰려와 있다.

9시 정도가 되었을 때 개학식이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와 함께 몇 분의 인사말이 끝난 후 일학년 아이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하얀색과 검은색의 드레스와 정장을 한 아이들이 들어 오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게 보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만 우리와 함께 있었다. 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이만 아르겐과 함께 같은 반 아이들과 서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간단한 개학식이 끝난 후 아이들은 각각 자기 반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아이들 반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처럼 각 교실에 학년과 반이 쓰여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하나 둘이어야 말이지!) 우왕좌왕하며 네 놈의 반을 찾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요한이는 아르겐과 함께 사라지고, 결국 물어 물어 교실들을 찾았는데, 이미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은 집에 돌아간 후였다 (하하하). 결국 요한이만 선생님과 급우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다음날 등교시간을 물어 보니 등교시간이 제 각각이다. 같은 학년이라도 반에 따라 수업시간이 다 틀리다 (아이고! 큰일났네, 아이들을 어떻게 데려다 주나?)

다음 날 아침 민우를 데리고 8시에 학교를 같다. 가장 저학년인 민우가 가장 일찍 수업을 시작한다. 9시 반에는 고은이가, 11시 반에는 정연이가 1시 50분에는 요한이가 수업을 시작한다. 그나마 정연이와 요한이는 등교시간이 날마다 제 각각인 것 같았다. 정연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학교에 갔는데 고은이가 학교 밖에 서있었다. 어 벌써 수업이 끝났나? 고은이에게 물으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고은이 손을 붙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직원 중에 한 명이 지금 교장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나와 면담하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고은이를 데리고 교장실로 갔다. 잠시 있으니 러시아 통역을 할 수 있는 키르키즈인 직원 한 분이 들어오셨다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은 모두 러시아 인들임). 이야기를 하는 요점인즉, 고은이가 전혀 러시아말과 키르키즈어를 모르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아이들을 영어 수업을 하는 터키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한 달, 일 주일, 아니 하루도 아니고 ,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된 아이가 한 시간 수업을 했는데, 이런 말이 나오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나는 침착하게 아이들에게 시간을 더 주고, 인내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 과정이 낯 설수 있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과 이 학교의 학생들에게 다른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과 함께, 나는 한국과 미국의 예를 들며, 한 두 학기만 지나면 지금 같고 있는 염려들이 불필요한 염려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교장 선생님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나에게 수업에 참관할 것을 권고하였다. 고은이 손을 잡고 학교 교정을 나올 때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고은이 때문이었는지,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끝날 때마다 물어보았다. “수업 괜찮았니?” “친구들은 어때?” “선생님은 러시아 분이시니, 키르키즈 분이시니?” 민우는 “다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고 대답한다. “어, 그래? 좀 이해해?” “아니, 아무것도 이해 못해, 그래도 괜찮아.” 민우가 많이 대견스럽게 보였다. 정연이, 요한이도 잘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고은이를 반에다 데려다 주는데 마침 교장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학 수업이었다.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신다. 얼른 Somer를 데리고 와서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맨 앞에 앉아 있는 고은이에게 가있었다. 그런데 고은이는 얼음 덩어리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바람이 완전히 빠져버린 축구공 같아 보였다. 책과 공책도 꺼내지 않고 손 가락도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보시고는 다른 아이에게서 공책을 받아 고은이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그래도 움직이질 않는다. “아, 이래서 선생님께서 어제 말씀을 하셨구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쓰러 내리며 지켜보기를 30여분, 정연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 내가 먼저 교실을 나왔다. 나중에 Somer와 이야기를 하면 차라리 남자 아이들처럼, 고은이도 한 학년을 늦출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하는 고은이를 보며 아내는 하루 동안 금식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간절한 엄마의 기도를 주님께서 또 응답하여 주셨는지, 고은이는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얼굴도 많이 밝아지고, 다른 아이들의 손도 붙잡고 같이 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에 무거움이 조금은 가라 앉는 듯 했다. (그리고 몇 칠 전 알게 된 사실은 고은이의 짝꿍이 얼마 안 있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될 키르키즈 아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동안 영어공부를 많이 해왔고 앞으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은이 일로 인해 염려를 많이 한 첫 주였지만, 참으로 재미있고 감사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첫 주였다. 나는 아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사 나르고, 또 스케줄을 몰라서, 집에 있는 것 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학교는 아이들이 다녔지만, 바쁘기는 내가 더 바빴던 한 주였다 (거의 아침 8시부터 오후 세네 시 까지는 학교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온 한국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많은 학생들이 내 주변에 몰려 들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우리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인사성이 얼마나 바른지, 전부 나에게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하루 종일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나는 무슨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었다 (하하하!). 조그만 시골과 같은 이 탈라스에 있는 이 학교에 천이백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과 고은이 선생님에게 있었던 서운함도 첫 주가 지나기 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미국이나 한국에서 학교에 입학하는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가? 모든 증명서들이며, 건강기록이며 말이다. 사실 홈 스쿨링을 한 아이들이라 학업증명서, 학교 증명서들도 없고, 언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아이들인데, 어쨌던 받아 준 것이 고마운 것 아닌가?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한 말들이 비록 나의 관점에서는 옳은 말이었을 지는 모르지만 (통역을 한 키르키즈분도 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그 분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가 기대하는 대로 반응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과 같은 환경에서는 많은 이민자들의 자녀들이나 유학생들을 위해 좋은 제도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을 다른 상황아래서 동일하게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중 얼마난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는가!  새로운 문화에서 겸손과 배움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좌충우돌의 첫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갔다. 첫 주보다는 덜 흥미롭고 한가한 둘째 주였지만 그냥 이대로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정연아, 너 내일 학교 혼자 가야 해? 어떻게?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

Last Updated on Thursday, 08 April 2010 21:46